반월당 휴게텔, 중간에 나가려면 쪽지가 필요했습니다
반월당 휴게텔 방에서 집 전화가 울려 코스를 끝까지 못 할 것 같았습니다. 문 안 안내에는 나가는 말이 없었고, 데스크에서 분홍 쪽지에 도장을 받아야 현관이 열렸습니다. 같은 쪽지가 있어야 같은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방 안 조명은 낮았고, 휴게텔 벽시계는 자정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반월당 골목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코트 주머니 전화가 울렸습니다. 집 쪽 급한 일이라 코스를 끝까지 못 할 것 같았습니다. 문 안쪽 안내에는 나가는 말이 한 줄도 없었습니다. 가운 끈을 매고 복도로 나오니 카펫이 발에 걸렸습니다. 복도 끝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만 났습니다.
데스크는 엘리베이터 옆이었습니다. 나는 방 카드를 내려놓으며 지금 나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직원은 벽의 안내를 가리키지 않고 서랍에서 분홍 쪽지를 꺼냈습니다. 쪽지에는 나가는 시각만 적는 칸이 있었습니다. 도장을 받아야 현관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주차 칸은 그 쪽지와 따로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펜이 마르지 않았는지 먼저 보았습니다.
뒷문으로 빠지면 빠를 줄 알았습니다. 복도 끝 문은 잠겨 있었고 비상이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직원은 그 문은 안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나가는 길은 도장 찍힌 쪽지를 현관 쪽에 보여주는 쪽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분홍 쪽지를 가운 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걸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한 층을 지나 멈췄습니다.
일층 공동현관 앞 의자에 잠깐 앉았습니다. 쪽지를 보여 주자 직원이 시각을 펜으로 적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바깥 유리에는 서리가 앉아 반월당 네온이 번졌습니다. 전화는 현관 밖에서 받았습니다. 통화가 짧아 코트는 아직 이층에 있었습니다. 바람은 목덜미까지 들어왔습니다. 횡단보도 쪽에서는 택시 한 대가 빈 차로 지나갔습니다.
다시 올라갈 때 직원은 같은 쪽지가 있어야 같은 방으로 넣는다고 하였습니다. 새 카드를 뽑으면 남은 시간이 끊긴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도장 찍힌 쪽지를 접지 않고 데스크에 올렸습니다. 직원은 아까 시각 옆에 돌아온 시각을 적었습니다. 방 문은 내가 나갔던 그 번호였습니다. 벽시계는 나갈 때보다 십여 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코스가 끝나고 내려오니 분홍 쪽지는 데스크에 남아 있었습니다. 내 손에는 방 카드만 있었습니다. 주차 도장에는 들어온 시각만 있고, 중간에 나갔던 시각은 없었습니다. 직원은 중간 외출은 주차 칸에 안 적힌다고 하였습니다. 반월당 횡단보도는 빨간불이었습니다. 코트 깃에는 아직 방 안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